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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드라이버: 고독한 영웅과 도시의 어둠

by moonnnnnight 2025.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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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드라이버: 고독한 영웅과 도시의 어둠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의 1976년 작품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는 영화사에서 가장 강렬한 캐릭터 연구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로버트 드 니로(Robert De Niro)가 연기한 트래비스 비클(Travis Bickle)은 현대 사회의 소외된 개인을 대변하는 동시에, 폭력과 구원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물이다. 영화는 뉴욕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타락한 도시에 적응하지 못한 한 남자가 어떻게 점점 광기로 치닫는지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본 글에서는 택시 드라이버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여 현대 사회의 소외, 폭력의 정당화, 남성성과 가부장제 문제, 그리고 영웅 서사의 비틀기 등을 중심으로 분석해보겠다.

1. 현대 사회에서의 소외와 인간 소멸

트래비스 비클은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후 뉴욕에서 택시 운전을 하며 살아간다. 그는 불면증을 앓고 있으며,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를 맺지 못한다. 영화 속 뉴욕은 온갖 범죄와 타락으로 가득한 도시로 묘사되며, 트래비스는 이러한 환경을 더욱 혐오한다. 하지만 그 자신도 이 사회의 일부로서 점점 더 깊은 고립감과 증오 속에 빠져든다.

트래비스의 고립감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겪는 소외 문제를 반영한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속도로 진행된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은 인간적인 유대 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로 가득한 도시에서 누구와도 연결되지 못하며, 혼자 식사를 하고, 극장에서 외설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낸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 사회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그가 쓰는 일기는 자기 자신과의 대화이자,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드러내는 장치다. 그는 세상과의 접촉이 거의 없는 삶을 살며, 점점 더 자기만의 세계로 침잠한다.

2. 폭력의 정당화와 새로운 형태의 영웅

트래비스는 도시를 정화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끼며, 자신이 사회를 구원할 존재라고 믿기 시작한다. 그는 거리의 범죄자들, 특히 마약상과 포주를 적으로 규정하고, 총을 구입하며 점점 더 폭력적인 존재로 변모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그의 폭력이 정당화되는 과정이다.

트래비스는 특정한 정치적 이념을 가진 인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도시를 ‘더럽히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믿으며, 자신을 자경단원처럼 여긴다. 이는 개인이 사회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일종의 허위 의식을 반영한다. 그러나 그가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은 무질서하고 파괴적이며, 결국은 또 다른 혼란을 초래할 뿐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온 ‘정의로운 폭력’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인간 사회에서 폭력은 때때로 사회 질서를 유지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 폭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는가’에 있다. 트래비스는 스스로 정의의 사도로서 행동하지만, 그의 기준은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다. 결국 그의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광기의 발현일 뿐이며, 관객들은 그의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3. 남성성과 가부장제의 위기

트래비스는 영화 내내 여성과의 관계에서 실패를 경험한다. 그는 대선 후보 팰런타인의 선거 캠페인에서 일하는 벳시(Betsy, 시빌 셰퍼드 분)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그녀에게 외설 영화를 보여주려 하면서 관계가 급격히 악화된다. 이 장면은 트래비스가 일반적인 사회적 감각이 결여된 인물임을 보여준다. 그는 벳시를 ‘구원’해야 할 존재로 보지만, 그녀의 감정이나 의사는 고려하지 않는다.

한편, 그는 어린 매춘부 아이리스(Iris, 조디 포스터 분)와의 만남을 통해 또 다른 구원의 환상을 가지게 된다. 그는 아이리스를 그녀의 삶에서 ‘구해내야 한다’고 믿으며, 포주 스포트(하비 케이틀 분)를 제거하려 한다. 하지만 아이리스는 트래비스의 ‘구원’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일방적으로 자신이 구원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으며 행동하지만, 결국 그의 방식은 폭력을 수반한 강압적 행위일 뿐이다.

트래비스가 보이는 이러한 태도는 전통적인 가부장제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갖는 보호자의 역할과도 연관된다. 그는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지만, 그 방식은 극도로 남성 중심적이며 폭력적이다. 그는 여성을 독립적인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서사 속에서 구원받아야 할 대상으로만 인식한다.

4. 영웅 서사의 비틀기

고전적인 서사에서 영웅은 위대한 시련을 겪고 세상을 구하는 존재다. 하지만 택시 드라이버는 이러한 영웅 서사를 철저히 비틀어 놓는다. 트래비스는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행동은 자기만족적인 폭력일 뿐이다. 그는 뉴욕의 ‘악’을 처단하기 위해 총을 들지만, 그의 목표는 불분명하며, 결국 그의 폭력은 무차별적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신문 기사에서 ‘영웅’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관객들은 그가 진정한 영웅인지, 아니면 단순한 광인이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영화는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트래비스가 다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암시하는 듯한 결말을 보여준다.

이는 영웅이라는 개념 자체가 얼마나 모호하고 위험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사회는 때때로 특정한 인물을 ‘영웅’으로 추앙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없는가? 트래비스는 정말 영웅인가,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낸 실패한 존재인가? 택시 드라이버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깊은 사색을 요구한다.

5. 결론: 현대인의 불안과 영화의 의미

택시 드라이버는 단순한 범죄 영화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개인이 겪는 심리적 혼란과 폭력의 정당화 과정을 심도 있게 탐구한 작품이다. 트래비스 비클은 한 개인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사회 전체를 반영하는 거울과도 같다.

영화는 인간의 불안, 소외, 폭력 충동, 그리고 정의의 모호성을 탐구하며, 관객들에게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 자신을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트래비스가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택시를 운전하며 도시에 녹아드는 모습은, 이 모든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반복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우리는 몇 번이고 새로운 ‘택시 드라이버’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이야말로, 택시 드라이버가 던지는 가장 중요한 화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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