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왜 전쟁을 할까?
역사와 지정학의 얽힌 실타래 속으로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적으로 침공하면서 유럽 대륙은 21세기 들어 가장 충격적인 전쟁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단지 국경 분쟁이나 영토 충돌로 보기에는 그 배경이 복잡하다. ‘러시아의 확장주의’라는 문장 한 줄로 요약하기에도, ‘서방과의 대립’이라는 틀로만 해석하기에도 이 전쟁은 너무나 많은 역사적 맥락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이 글은 그 배경을 역사, 지정학, 정체성, 경제, 국제 정치라는 다양한 관점에서 차근차근 살펴본다.
1. 옛 소련의 그림자: 소련 해체와 우크라이나의 독립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며 우크라이나는 독립국이 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역사적으로 키예프 루시(Kievan Rus’)라는 공통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지만, 근대 이후에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는 ‘형제국가’의 위치였지만, 독립 이후에는 유럽과의 연대를 강화하며 정체성을 다시 정립해왔다.
러시아에게 있어 우크라이나는 단순한 이웃 나라가 아니라, 전략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나라다. 푸틴은 여러 차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하나의 민족”이라고 발언하며 역사적 연속성을 주장해왔다. 이는 곧 우크라이나의 독립성과 주권을 부정하는 관점으로 연결된다. 러시아 국민의 일부도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잃어버린 땅' 혹은 '서방에 빼앗긴 형제'로 여기고 있어, 정치적 메시지 이상의 감정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시각은 푸틴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우크라이나가 독립적인 주권국으로서 서방과 밀착하는 것을 러시아는 단순한 외교적 선택이 아닌, 자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
2. 크림 반도와 돈바스: 영토를 둘러싼 분쟁의 시작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 반도를 병합했다. 이는 국제법상 불법적인 점령으로 간주되었으며, 서방 세계는 이에 대해 강도 높은 제재로 대응했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동부의 돈바스 지역, 즉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는 친러 반군이 활동을 개시하고 러시아의 지원을 받으며 사실상의 내전 상태로 들어갔다.
푸틴 정부는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주민들의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이는 실제로는 소련 붕괴 이후 상실된 전략적 요충지를 회복하려는 의도가 강했다. 크림 반도는 흑해로의 접근권을 보장하고, 세바스토폴 해군 기지는 러시아의 군사적 핵심 자산이었다. 이 지역은 군사 전략뿐 아니라 민족, 언어, 문화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돈바스 지역의 경우,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계 주민들과 우크라이나계 주민 간의 갈등이 존재했다. 이 지역의 산업 기반과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러시아는 이곳을 분리 독립시키려는 움직임을 적극 지원하며 분쟁을 격화시켰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주권과 영토 보존이라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기에, 양측의 충돌은 갈수록 격해졌다.
3. NATO와의 갈등: 러시아의 불안, 서방의 확장
러시아가 전쟁의 명분으로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NATO 가입 가능성이다. 냉전 종식 이후, 구 소련권 국가들이 줄줄이 NATO에 가입하면서 러시아는 ‘안보 위협’을 점점 더 느끼게 되었다. 발트 3국, 폴란드, 루마니아 등이 NATO의 일원이 된 것은 러시아 입장에서 국경에 군사적 적대 세력이 다가온 것으로 해석되었다.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게 되면 러시아와 NATO 사이에는 사실상 ‘완충지대’가 사라진다. 이는 푸틴 정권에게 전략적 붕괴로 받아들여졌고, 결국 군사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활용되었다. 특히 미사일 방어 체계나 NATO의 전진 배치가 러시아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된다고 주장하며 자위권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서방 측에서는 NATO 확장이 자발적인 선택이었다고 반박한다. 각국이 자국의 안보를 위해 NATO 가입을 선택했고, 이는 주권국가로서의 정당한 결정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국제 사회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NATO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방어 동맹임을 강조하며, 오히려 러시아의 군사 행동이 주변 국가들의 안보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고 본다.
4. 정체성의 충돌: 유럽화 vs 러시아화
우크라이나 내에는 유럽화와 러시아화라는 두 개의 큰 흐름이 존재한다. 서부 지역은 역사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폴란드 등의 영향권에 있었고, 유럽 중심의 정치 성향이 강하다. 반면 동부와 남부는 러시아어 사용 비율이 높고, 친러 성향이 짙다.
2013년, 우크라이나 대통령이었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EU와의 협력 협정을 거부하고 러시아와 가까운 정책을 취하면서, 유로마이단(시위)과 정권 퇴진 운동이 발생했다. 이후 서방 성향의 정부가 들어섰고, 러시아는 이를 ‘서방의 개입’으로 간주하며 크림 반도 병합과 동부 내전을 야기했다.
우크라이나의 정체성 문제는 단순한 문화 차원이 아니다. 그것은 외교 정책, 경제 전략, 교육 방향 등 전 국가적인 노선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에서는 유럽 연합에의 통합을 꿈꾸고, 다른 한편에서는 러시아와의 역사적 유대를 되살리려 한다. 이러한 분열은 국내 정치의 불안정을 심화시키고, 외세가 개입할 여지를 남긴다.
5. 경제적 이해관계: 에너지와 곡물의 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유럽의 에너지·식량 안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국가들이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천연가스 수출국이며,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그동안 러시아 가스에 크게 의존해왔다. 우크라이나는 그 가스의 주요 수송 경로였다.
또한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빵 바구니’라 불릴 만큼 곡물 수출국으로서의 중요성이 크다. 전쟁으로 인해 곡물 수출이 차단되자 전 세계 식량 가격이 폭등했고, 특히 중동과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식량 불안정이 커졌다. 특히 러시아가 흑해를 봉쇄하며 항만을 통제하면서 국제 사회는 곡물 수송을 위한 협상을 벌여야 했다.
이러한 자원과 물류를 둘러싼 문제는 단지 지역적 충돌을 넘어서 전 지구적 위기 요인이 되었으며, 경제 제재와 공급망 교란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게 타격을 입혔다. 결국 에너지와 식량은 더 이상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쟁의 무기이자 전략적 도구가 되었다.
6. 국제사회의 대응: 제재와 지원의 이중주
러시아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는 대규모 경제 제재를 가했다. 푸틴 주변의 올리가르히(재벌)들이 타격을 받았고, 루블화 가치가 급락했으며, 수많은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했다. 고급 기술 수출 제한은 러시아의 산업 구조에 타격을 주었고, 특히 반도체, 항공 기술, 방산 분야에서 자립이 어려워졌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군사적·재정적 지원을 받으며 저항을 이어갔다. 미국의 무기 지원, EU의 경제 원조, 그리고 전 세계의 인도주의적 지원이 합쳐져 우크라이나는 예상보다 훨씬 강한 저항을 보여주었다. NATO와의 직접적인 개입은 없었지만, 사실상 현대식 무기와 정보 지원이 결정적이었다.
또한 국제 여론전도 치열하게 벌어졌다. 우크라이나는 전 세계 언론과 SNS를 활용해 피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리고, 동정 여론을 이끌어냈다. 이에 반해 러시아는 검열과 선전을 강화하며 자국 내 비판 여론을 차단하려 했다.
7. 전쟁의 미래: 끝은 어디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기적인 전투가 아니라,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일부는 ‘신냉전’의 시작이라 표현하고, 다른 일부는 ‘제국의 몰락’이라 해석한다. 어떤 결말이 오더라도 이 전쟁은 세계질서의 재편, 국제 안보 구조의 재정의, 에너지 및 식량 체계의 변화에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 것이다.
우크라이나 내의 전투 외에도, 사이버전과 정보전, 외교적 고립 전략 등 비군사적 전쟁도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이 전쟁은 현대전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기술과 정보가 지배하는 새로운 전쟁의 시대, 이 전쟁은 단지 총과 미사일만의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마무리하며: '왜'보다 중요한 '어떻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은 단지 두 나라 사이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 이 전쟁은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주권과 패권, 동맹과 독립 사이의 복합적 긴장을 드러낸다. ‘왜 전쟁을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복잡한 역사와 정치, 정체성과 경제가 얽혀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어떻게 끝낼 것인가’, 그리고 ‘전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이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이 전쟁의 맥락을, 그 내면의 복합성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평화를 향한 해법은 단지 무기력한 중재나 선언이 아닌, 구조적 전환과 진정한 국제 협력을 통해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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