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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좋은것들

돌고래는 왜 말을 할까? — 인간 언어와 해양 지능의 경계에서

by moonnnnnight 2025.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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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는 왜 말을 할까? — 인간 언어와 해양 지능의 경계에서
바다 속 지성체, 돌고래의 소리
“지구에서 인간 다음으로 똑똑한 동물은 누구일까?”
이 단순한 질문은 인간의 오랜 호기심을 자극해왔다. 유력한 후보 중 하나는 바로 바다 속을 유영하는 돌고래다. 과학자들은 수십 년간 돌고래의 지능과 행동을 관찰하며, 그들의 사회성, 공감 능력, 문제 해결력, 그리고 언어적 소통 능력에 주목해 왔다.

돌고래는 단순히 소리를 낼 줄 아는 동물이 아니다. 서로 이름을 부르고, 상황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조합하며, 그 소리를 통해 협동하거나 감정을 전달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다시 이렇게 바뀐다.

“돌고래는 언어를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나아가, “그 언어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을까?”

소리의 언어, 인간과의 비교
인간 언어의 핵심은 구조화된 상징 체계다. 문법, 의미, 맥락, 그리고 추상 개념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돌고래의 ‘소리 언어’는 이 중 일부 조건을 충족시킨다.

서명 휘파람(Signature Whistle): 돌고래는 각자 고유의 휘파람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인간의 이름처럼 사용되며, 서로를 부르거나 위치를 확인할 때 사용된다.
소리 조합의 유연성: 연구에 따르면 돌고래는 특정 상황에서 특정한 소리를 조합해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먹이를 발견했을 때와 위험 상황에서 내는 소리는 서로 다르다.
소리의 맥락 사용: 동일한 소리라도 맥락에 따라 의미가 바뀌는 경우가 관찰되었다. 이는 인간 언어의 '동음이의어'와 유사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신호체계 이상의 ‘기호적 소통’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돌고래는 단지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춰 소리를 조절하고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돌고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언어학자들과 해양생물학자들이 협력한 여러 연구에 따르면, 돌고래의 소리는 주파수, 길이, 리듬 등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고주파 클릭음(Click)과 휘파람(Whistle), 펄스음(Burst-pulse sounds)는 각각 다른 기능을 가진다.

클릭은 방향 탐지, 즉 '음향 레이더(에코로케이션)'의 역할을 하며,
휘파람은 주로 사회적 소통에 사용되고,
펄스음은 감정 표현이나 공격·방어 시 사용된다고 여겨진다.
이 세 가지를 자유롭게 섞어가며 돌고래는 수천 가지 소리 패턴을 만들어낸다. 2016년 스웨덴 룬드 대학의 연구에서는, 두 마리 돌고래가 음성 신호를 통해 서로의 행동을 조정하는 실험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었다. 이는 단순히 훈련받은 반응이 아니라, 의도적 협동을 위한 언어적 소통임을 보여준다.

돌고래 언어 해독은 가능한가?
이 질문은 마치 ‘외계인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닮아 있다. 실제로 NASA와 SETI는 돌고래 언어 연구를 외계 지적 생명체와의 소통 대비 연습으로 활용하고 있다.

언어학자 데니스 허벳은 돌고래와의 실시간 대화를 시도하는 ‘CHAT 프로젝트’를 통해, 돌고래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신호 패턴을 추출하고, 이에 반응하는 알고리즘을 개발 중이다. 이 시스템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식으로 소리를 분석하고,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는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까지 완전한 번역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돌고래가 의미 단위(Morpheme)를 사용하는 흔적이 있다는 점, 상황에 따라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컨텍스트 신호’가 존재한다는 점은 분명한 진전이다.

윤리적 논쟁: 언어가 존재하면, 권리도 존재하는가?
우리가 돌고래의 언어를 해독하고, 실제로 소통이 가능해졌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돌고래는 단순한 동물이 아닌, 자아와 감정, 관계망을 지닌 ‘사회적 존재’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그들을 수족관에 가두거나 서커스 훈련을 시키는 것은 정당할까?

2020년대 들어 일부 국가에서는 돌고래 보호 법안이 강화되었고, 캐나다는 모든 해양 포유류의 수족관 전시를 금지했다. 이런 움직임은 돌고래가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의 확장이다. 언어는 곧 존재의 증거이며, 그 존재에 대한 도덕적 존중의 시작이 된다.

언어란 무엇인가? — 인간 중심 사고의 재검토
우리는 오랫동안 언어를 인간만의 특권이라 여겨왔다. 문자, 문법, 문학, 철학이 모두 언어를 통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고래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게 된다면, 언어에 대한 우리의 정의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언어는 꼭 문자가 필요할까? 반드시 말로 표현되어야만 언어일까? 그렇지 않다. 언어는 ‘정보와 감정을 구조화하여 전달할 수 있는 체계’라면 어떤 형태든 언어가 될 수 있다. 즉, 돌고래의 클릭음도, 코끼리의 저주파 진동도, 꿀벌의 춤도 모두 언어의 일종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인류 중심의 언어 개념에서 벗어나, 생명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개념으로 우리를 이끈다.

마무리하며: 우리는 돌고래의 시를 읽을 수 있을까?
돌고래가 나누는 소리 속에 사랑의 속삭임이 있을 수도 있고, 경고의 외침이 있을 수도 있다. 어떤 소리는 아득한 기억을 불러오고, 어떤 소리는 미래의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해독하게 되는 날, 우리는 단지 새로운 종과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라는 별에 함께 사는 또 하나의 지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성을 통해 인간 언어의 의미를 다시 돌아보게 될지도 모른다.

바다의 말은 여전히 낯설고 멀지만, 그 속에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더 깊고 오래된 이야기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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