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왜 다들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고 말할까?
– 퇴사 욕구의 심리학과 시대의 피로
“오늘도 출근을 앞두고 마음이 무겁다.”
“회의만 벌써 네 개째, 내 할 일은 언제 하나.”
“사표를 쓴다는 상상을 하며 버틴다.”
이제 ‘퇴사’라는 말은 더 이상 충동이 아니다. 일상의 감정 표현이자, 일에 대한 심각한 회의감의 반영이다.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회사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는 걸까?
이는 단순한 업무 스트레스를 넘어서, 현대 사회 전체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 개인의 정체성 위기, 그리고 노동과 인간 존엄성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된다. 지금부터 이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
1️⃣ 일은 왜 이토록 고통스러워졌는가 – ‘의미 상실’의 시대
과거 세대에게 ‘일’은 생존이자 정체성이었다. 전후 산업화 시대에는 직장을 구하면 결혼도 할 수 있고, 집도 장만하고, 자식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2020년대 한국 사회에서, 그런 공식은 깨져버렸다.
평생직장은 사라졌고, 노동의 보상은 점점 불투명해졌다. 연봉이 올라도 물가는 더 오르고, 열심히 일해도 집 한 채 마련하기는커녕 월세를 벗어나기조차 어렵다. 일에 ‘보람’을 느낄 수 없고, 일한 만큼의 ‘삶의 질 향상’이 뒤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묻는다.
“나는 왜 이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하나?”
이런 질문은 단순히 월요병의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 위기감으로 이어진다. ‘일이 곧 나다’라는 오래된 정체성 모델은 깨졌고, 지금은 오히려 일에서 벗어나 ‘진짜 나’를 찾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이것이 바로 ‘퇴사 욕구’의 핵심이다.
2️⃣ MZ세대의 퇴사 심리 – 감정노동과 불합리의 거부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위계질서 중심 조직 문화, 불투명한 커뮤니케이션, 권위적인 리더십에 대한 저항 의식이 강하다. 이들은 조직 내에서 감정노동을 강요받을 때 가장 먼저 피로감을 느끼고, “나를 지키기 위해 떠나겠다”고 결심한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세대 차이로 치부할 수 없다. 2030세대는 **"회사는 내 삶의 도구일 뿐, 존재의 전부가 아니다"**는 인식 아래, 자아실현과 워라밸(Work-Life Balance)을 더 중시하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퇴사’는 이들에게 도피가 아니라, 자기 결정권의 행사다.
퇴사는 그저 회피가 아닌, 부조리하고 비효율적인 구조로부터의 탈출이며, 자신을 다시 세우기 위한 움직임이다.
3️⃣ 번아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 구조적 병든 시스템
미국의 심리학자 허버트 프루덴은 번아웃을 “열정을 갖고 시작했던 일이 감정적 고갈과 냉소로 바뀌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이것은 단순히 ‘힘든 일’을 오래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번아웃은 무가치하게 느껴지는 노동, 보상받지 못하는 감정소비, 의미 없는 반복 업무가 만들어내는 피로의 총합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바로 그런 상태다.
우리 사회는 ‘열정 페이’, ‘주말 업무’, ‘야근 문화’, ‘인력 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개인의 감정을 마모시키며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강요해왔다. 여기에 정서적 안정과 성장의 기회를 주지 않는 기업 문화는 번아웃을 가속화시킨다.
실제로 2020년대 들어 정신과 진료를 받는 직장인의 비율이 급격히 증가했으며, 직무 불만족이 삶의 질 저하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다. 퇴사는 이런 흐름의 결과이며, 때로는 마지막 자기보호 수단으로 등장한다.
4️⃣ 퇴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새로운 노동철학과 삶의 방향
많은 사람들은 퇴사를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 중요한 건 그 이후다.
‘퇴사’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요즘은 퇴사 이후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N잡러, 디지털 노마드, 창업, 파트타임 프리랜서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이 등장하고 있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조직 속의 ‘하나의 부속품’으로만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
“먹고살 수 있을까?”
“나는 무얼 잘하지?”
이 질문들에 쉽게 답할 수 없다. 그래서 퇴사는 무작정 도전이 아니라 심리적 리셋이 필요한 상태, 다시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멈춤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5️⃣ 결론 – ‘퇴사 욕구’는 감정이 아닌 신호다
퇴사를 원한다는 말은 단지 피곤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말 속에는 자기 삶의 통제권을 찾고자 하는 강한 욕망, 불합리한 환경을 바꾸고자 하는 저항,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갈망이 들어 있다.
‘퇴사’라는 단어를 밈처럼 소비하면서도, 그 속에 숨은 진지한 메시지를 놓쳐서는 안 된다. 그 말은 지금 이 시대의 노동자가 얼마나 외롭고 지쳤으며, 또 얼마나 삶의 의미를 갈망하는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우리는 그 거울을 보며 이렇게 묻는다.
“지금의 일은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가, 아니면 마모시키고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에 진지하게 답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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