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 진짜 이상한 과학 이야기 — “고양이는 죽었을까, 살았을까?”
프롤로그 — 과학이 이상해진 날
우리는 세상이 아주 규칙적이고, 논리적으로 움직인다고 믿는다. 사과는 나무에서 떨어지면 땅에 떨어지고, 자동차는 엔진이 돌아가야 움직인다. 이런 것들을 설명해주는 게 바로 고전 물리학이다. 뉴턴, 갈릴레이 같은 사람들이 만든 이론들이 수백 년 동안 세상을 설명해줬다. 그런데 어느 날, 과학자들은 아주 작고 작은 세계, 즉 ‘원자보다 작은 세계’를 들여다보다가 기묘한 현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이건 도무지 말이 안 돼.”
그때부터 과학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그것이 바로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이다. 양자역학은 지금의 컴퓨터, 스마트폰, 반도체, 레이저, MRI 같은 첨단 기술의 기반이 되는 핵심 이론이다. 그런데 이 이론은 너무나도 이상해서, 심지어 아인슈타인조차도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양자역학은 어떤 이야기일까?
1. 입자인가 파동인가? — 이중슬릿 실험
양자역학의 출발점 중 하나는 이중슬릿 실험(double-slit experiment)이다. 이 실험은 “빛”이나 “전자” 같은 아주 작은 입자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고안되었다.
실험 설명 (쉽게):
- 벽에 두 개의 틈(슬릿)을 만든다.
- 그 앞에서 전자(혹은 빛)를 하나씩 쏜다.
- 슬릿 뒤에는 입자가 어디에 닿았는지를 확인하는 스크린이 있다.
결과 1: 입자처럼 생각했을 때
슬릿이 두 개면, 전자는 두 줄로 찍혀야 한다. 마치 BB탄이 두 개의 문을 지나 벽에 부딪힌 모양처럼.
결과 2: 하지만 실제로는?
스크린에는 여러 개의 밝고 어두운 줄무늬가 생긴다. 마치 물결이 겹칠 때 생기는 간섭무늬처럼. 즉, 전자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처럼 행동했다.
더 충격적인 건?
전자를 하나씩 쏴도 이런 간섭무늬가 생긴다는 것이다. 한 번에 하나의 전자만 보냈는데도, 마치 그 자신이 두 개의 틈을 동시에 지나간 것처럼 행동한다.
대체 무슨 일이?
“이건 관측하지 않으면 파동처럼 행동하고, 누가 보면 입자처럼 바뀐다”는 것이다. 이처럼 양자역학 세계에서는, 우리가 보고 있느냐 안 보고 있느냐에 따라 현실이 달라진다. 너무 이상하다.
2. 확률의 세계 — 결정은 나중에?
양자역학에서 물질은 확률적인 존재다. 전자는 정확한 위치에 있는 게 아니라, “어딘가 있을 가능성”으로만 존재한다. 마치 구름처럼 퍼져 있다가, 누가 측정하면 그때서야 한 점으로 ‘결정’된다. 이걸 파동함수의 붕괴라고 한다.
이건 마치 “학생이 시험 공부를 안 했지만, 시험지를 열기 전까진 성적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시험지를 열어야 비로소 점수가 생기는 것이다.
3. 슈뢰딩거의 고양이 — 죽었고, 살아있고, 둘 다?
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나온 유명한 사고실험이 있다. 바로 슈뢰딩거의 고양이다.
상황:
- 상자 안에 고양이 한 마리
- 방사성 원소 (확률적으로 붕괴될 수 있음)
- 방사능이 방출되면 독가스 장치가 작동 → 고양이 사망
- 하지만 이 모든 건 닫힌 상자 안에서 일어나므로,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럼 고양이는?
양자역학에 따르면, 상자를 열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어있으면서 동시에 살아있다. 이게 말이 되나? 하지만 양자역학 세계에선 이것이 논리적 귀결이다. 측정되기 전까지 모든 상태는 겹쳐진 상태(중첩)로 존재한다.
4. 얽힘 — 떨어져 있어도 연결된 입자들
양자역학에서 또 하나 충격적인 개념은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이다.
두 입자가 서로 연결되어 얽히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한쪽의 상태를 측정하는 순간, 다른 쪽의 상태도 즉시 정해진다. 심지어 이들이 서로 수십억 광년 떨어져 있어도 말이다.
이건 빛의 속도보다 빠른 정보 전달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은 이를 “유령 같은 작용(spooky action at a distance)”이라 불렀다. 아직까지도 이 현상은 완벽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특성은 지금의 양자 컴퓨터와 양자 암호통신 기술의 핵심이 된다.
5. 현실이 없다? — 측정이 만들어낸 세상
양자역학에서는 “객관적인 현실”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즉, 우리가 어떤 입자의 위치나 상태를 측정하기 전까지, 그 입자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긴 하지만, “어디에 있는지”가 정해져 있지 않다. 측정이라는 행위가 현실을 결정짓는다는 의미다.
이는 과학을 넘어서 철학의 문제로 번져나간다. “우리는 진짜 현실을 살고 있는가?”, “우리가 보는 세계는 관측된 결과일 뿐인가?”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에필로그 — 우리도 양자적 존재일까?
과학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는다. 고전 물리학은 질서정연하고 예측 가능한 세상을 상상했지만, 양자역학은 우리가 불확실성과 함께 살아가야 함을 보여준다.
그래서 양자역학은 단순한 과학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가 누구인지, 이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아주 작은 세계가, 아주 큰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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