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왜 돈까스, 제육을 좋아할까?
— 밥상 위 남성성의 풍경과 의미
1. “그냥 이게 제일 맛있어서요”라는 말 속의 맥락
“오늘 점심 뭐 먹지?”
이 질문 앞에서 유독 자주 등장하는 메뉴가 있다.
바로 돈까스와 제육볶음.
특히 남성들이 선호하는 식사로 손꼽히는 두 메뉴는, 식당에서도 ‘남자 손님을 위한 기본 메뉴’처럼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선택은 단순히 입맛 때문일까?
‘그냥 맛있으니까’라는 말은, 사실 수많은 사회적 맥락과 기억, 정체성의 층위를 은근히 감추고 있다.
우리가 매일 무심코 고르는 점심 한 끼 안에는 사회가 길러낸 남성성의 코드, 감정의 기억, 계층적 경험이 함께 녹아 있다.
2. 남성성과 ‘고기’: 힘의 상징이자 사회의 요구
돈까스와 제육의 공통점은 단연 ‘고기’다.
고기는 인류 역사에서 늘 힘, 생산, 생존의 자원으로 간주되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육체노동 중심의 산업 구조와 맞물리며, 고기 중심 식사 = 남성의 기본 에너지 충전 방식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았다.
돈까스는 서양식 튀김이지만, 한국에서는 ‘든든한 한 끼’로 재해석되었다.
제육볶음은 고추장 양념을 통해 남성적 거칠음과 화끈함을 상징한다.
사회학적으로 보면, 이는 ‘음식의 젠더화’ 현상이다.
육류는 ‘남성다움’을 상징하며, 샐러드·디저트 등은 여성성과 연결된다.
그런 점에서 돈까스와 제육은 단지 ‘선택된 음식’이 아니라, 사회가 허용한 남성적 정체성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3. 집단 기억과 ‘맛의 사회화’: 군대, 학교, 직장의 영향
우리가 음식을 좋아하게 되는 과정에는 기억의 축적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들이 돈까스와 제육에 강한 애착을 가지는 이유는, 공적 공간 속의 반복된 경험 때문이다.
학교 급식: 중고등학생 시절, 급식에서의 ‘특식’은 대부분 돈까스나 제육볶음이었다. 이때의 감정은 ‘보상’이나 ‘기대’와 연결된다.
군대 식단: 제육은 고된 훈련 후의 작은 위안이었고, 돈까스는 생일 특식 또는 사지에서의 자율 식사였다.
직장 점심: 반복되는 업무 사이의 소소한 탈출구로, 가장 보편적이고 안전한 선택지가 이 두 메뉴다.
즉, 이 음식들은 “기억의 정서화된 반복”을 통해 선호로 자리 잡는다.
맛의 기호는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사회가 배양한 문화적 결과다.
4. 식당 시스템 속 성별의 역할: 누구를 위한 메뉴인가
대다수 식당의 점심 메뉴판을 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남성 고객을 위한 육류 중심 메뉴’, ‘여성 고객을 위한 가벼운 메뉴’의 구분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돈까스/제육/김치찌개 = 남성 중심식
샐러드/덮밥/파스타 = 여성 선호식
이는 식당 업주들이 성별 소비 패턴을 전제로 구성한 전략이다.
즉, 사회 전체가 이미 음식에 젠더 역할을 부여하고 있으며,
남성 손님은 ‘고기를 든든하게 먹어야 한다’는 규범을 스스로도 내면화하고 있다.
5. 경제적 조건과 효율성: 생존을 위한 선택
사회 초년생, 일용직 노동자, 대학생 등 경제적 여유가 부족한 계층일수록,
음식 선택의 기준은 맛보다는 ‘양’, ‘가성비’, ‘효율’이다.
돈까스는 보통 밥, 국, 반찬, 튀김까지 포함되어 있어 가격 대비 풍성하다.
제육은 맵고 기름진 특성 덕분에 밥을 많이 먹게 하며, 빠르게 포만감을 준다.
즉, 이 음식은 남성의 신체적 에너지 회복에 최적화된 생존형 메뉴다.
음식은 배를 채우는 동시에 사회 속 위치에 적응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쓰인다.
6. 감정의 해소와 자아의 안식처
음식은 단지 배고픔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다.
심리학적으로, 우리는 특정 음식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감정을 정리한다.
돈까스와 제육은 ‘바삭함’과 ‘매움’이라는 자극을 통해 감정을 분산시키는 기능을 한다.
실패한 오전 회의 후, 돈까스 한 조각을 베어 물며 자신을 위로한다.
쌓인 스트레스를 매운 제육 한입으로 털어낸다.
이러한 음식은 ‘위로의 도구’이자, 사회적 긴장 속에서 자기 자신을 재확인하는 일상의 의식이다.
7. 남성성의 재생산: 우리는 계속 이걸 먹는다
“왜 남자들은 돈까스, 제육을 좋아해?”라는 질문은
결국 사회가 남성에게 기대하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되묻는 질문이다.
이런 음식을 선택하는 행위는 무심코 지나치지만,
그 속에는 한국 사회가 남성에게 기대해 온 강함, 일관성, 묵묵함, 효율성이 들어 있다.
이제 우리는 다시 물어야 한다.
나는 이 음식을 진심으로 좋아하는가,
아니면 그렇게 좋아하라고 사회가 길러온 것인가?
8. 결론: 음식은 기호가 아닌 언어다
돈까스와 제육을 먹는 남성의 손에는 포크와 젓가락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길러온 남성성의 코드와 경험의 역사가 들려 있다.
‘좋아한다’는 감정은 취향이 아니라 훈육의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점심을 고르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이 음식은,
결국 나를 만든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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