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커침대 위엔 먼지보다 오래된 내가 쌓여 있었다
방에 벙커침대가 있다. 정확히는, 있었다. 아니, 지금도 있지만 사실상 존재감은 없다. 애초에 이 침대를 사던 이유는 공간을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책상을 침대 아래 두고, 침대 위에서 자면 방이 넓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나름 "자립"의 첫 상징이었다. 전에 집에 살던 시절, 내 방에서 가장 크고 비싼 물건이기도 했다.하지만 현실은 조금씩 어긋났다. 이사하고 나서는 침대 위로 올라가는 게 점점 귀찮아졌고, 계단은 삐걱거렸고, 이불을 개는 일은 거의 예술 행위처럼 어렵게 느껴졌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2층은 창고가 되었다. “일단 올려두자”는 물건들이 쌓였고, 그 위에 먼지가 쌓였고, 그 위에 계절이 지나갔다.가끔 침대 밑 책상에 앉아 위를 올려다보면, 그냥 먼지 더미가 아니라, 나의 어떤 ..
2025.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