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알면좋은것들

왜 우리는 정치에 실망하면서도 투표를 하는가?

by moonnnnnight 2025. 4. 8.
반응형

 

왜 우리는 정치에 실망하면서도 투표를 하는가?
선거철이 되면 언제나 반복되는 풍경이 있다. “어차피 다 똑같지”, “누가 되든 내 삶은 안 바뀌어”, “정치인들은 믿을 수 없어”라는 말들이 회자된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실망하고, 정치인을 불신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투표소로 향한다. 기권도 선택이지만, 다수는 여전히 한 표를 행사한다. 도대체 왜일까? 왜 우리는 실망하면서도 여전히 투표를 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심리적 습관이나 의무감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면에는 민주주의의 복잡한 메커니즘, 인간의 본능적인 소속감, 그리고 ‘희망’이라는 감정의 역설이 존재한다.

1. 정치에 대한 실망은 어디서 오는가?
한국 사회에서 정치 불신은 뿌리 깊다. 정경유착, 부정부패, 선거 공약의 번복, 정파적 싸움, 언론 플레이… 수십 년간 축적된 정치적 피로감은 이제 일종의 사회적 정서가 되었다. 정치인은 국민을 대표해야 할 위치에 있지만, 실제로는 정당 이익이나 개인의 영달을 좇는 모습이 더 자주 목격되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 자체가 부패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정치라는 행위 자체에 실망하기보다는, 정치의 운영 방식과 거기에 참여하는 이들에 대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정치란 원래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지만, 한국 정치에서는 ‘승자독식’, ‘편 가르기’가 구조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유권자의 실망을 재생산하고, 정치에 대한 냉소를 불러온다.

2. 그래도 왜 우리는 투표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투표를 한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심리적, 사회적 동인을 꼽을 수 있다.

1) 민주주의의 내면화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으로 산다는 것은, 정치 참여가 권리이자 책무라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내면화하게 만든다. 초·중·고 교육부터 “투표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배워왔고, 1987년 민주화 이후 ‘투표권’은 단지 절차가 아니라 ‘국민주권’의 상징이 되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 실망하면서도 “그래도 투표는 해야지”라는 일종의 의무감을 갖게 된다.

2) 작은 기대, 혹은 절박한 바람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삶이 나아지길 바란다. 한 표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한 표조차 없으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현실을 체감한다. 즉, 투표는 실망 속에서도 무언가를 바꿔보려는 작지만 절박한 시도이자 기대다. 특히 지금보다 나은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부모 세대의 마음, 불공정에 분노하는 청년층의 감정은 이런 ‘희망의 잔여’를 투표라는 행동으로 표출하게 만든다.

3) 분노의 표출, 또는 최악의 방지
투표는 단지 지지를 표현하는 수단만이 아니다. ‘심판’ 혹은 ‘방어’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이번만큼은 저 사람은 안 된다”, “저 세력은 견제해야 한다”는 부정적 동기도 강한 투표 참여로 이어진다. 이때 투표는 정치를 바꾸기 위한 긍정의 선택이기보다, 더 나쁜 상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 된다.

3. 투표, 실망과 희망 사이의 긴장
정치적 실망과 투표 참여는 서로 모순되는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현대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독특한 긴장 상태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정치’를 약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의견과 갈등을 조정하는 ‘덜 나쁜 선택의 연속’이다. 그래서 유권자는 늘 ‘최선’이 아닌 ‘차선’, 혹은 ‘차악’을 고른다.

이 과정에서 정치에 대한 실망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실망이 클수록 “이번에는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가 생기고, 투표는 그 기대의 실현을 위한 유일한 수단이 된다. 우리는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기대하고, 실망하면서도 한 표에 희망을 건다. 이것이 바로 현대 민주주의 시민의 모습이다.

4. 우리는 무엇을 바꿔야 할까?
정치에 실망한 채로 투표만 반복하는 것만으로는 변화를 만들기 어렵다. 결국 진짜 변화는 유권자의 '정치적 주체화'에서 비롯된다. 단지 선거 기간에 후보를 고르는 소비자가 아니라, 평소에도 정치 의제를 감시하고, 공공의 문제에 의견을 내고, 이슈에 반응하는 '활동적 시민'이 될 때 정치도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정보의 선택’에 있다. 어떤 미디어를 소비하는가, 어떤 사실을 신뢰하는가, 누구의 이야기를 듣는가에 따라 우리의 판단은 달라진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정확한 정보에 기반한 판단을 내리고, 혐오와 조작에 휘둘리지 않는다면, 정치는 단순한 실망의 대상에서 다시금 희망의 공간이 될 수 있다.

5. 결론: 실망이 끝이 되지 않도록
정치에 실망한 사람들, 냉소하는 시민들은 사실 그만큼 정치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다. 완전히 무관심한 사람은 실망조차 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실망을 멈추지 말고, 그 실망을 통해 더 나은 질문을 던지고, 더 나은 선택을 시도해야 한다.

투표는 완성된 민주주의의 증거가 아니라, 계속해서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의 과정이다. 우리가 반복해서 투표하는 이유는 어쩌면, 실패한 과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마지막 저항일지도 모른다.

실망은 해도, 포기는 하지 말자.
우리가 계속 투표하는 이유는 결국, 변화는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응형